위협을 이기는 지도자
주제 : 위협을 이기는 지도자
본문 : 느헤미야 6: 1 ~ 14
말씀 : 박종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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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는 외부의 공격을 견뎌 내고 내부분열과 싸우며 성벽을 건축해 왔습니다. 힘들고 두렵고 고통스런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이겨내어 이제 성벽 문짝을 다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대적들은 포기할 줄 몰랐고, 이제는 느헤미야를 직접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도자만 쓰러뜨리면 더 이상 일이 진행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에게는 모든 위협과 음모를 다루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배우기를 원합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그 때는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1절)
성문의 문짝만 달면 되는, 이제 일의 완성이 코앞에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숨을 돌리려고 했습니다. 이때 적들은 더욱 조급해져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저지하려고 합니다.
이제 잠시 후면 성공할 것 같은 바로 그 때가 가장 경계해야 할 때입니다. 항상 결정적 위기는 완성되려는 단계에서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이 완전해질 때까지 우리의 모든 노력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내가 곧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그들이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사람을 보내되 나는 꼭 같이 대답하였더니(2~4절)
첫째, 대적들은 교묘하고 철저하게 음모를 꾸밉니다. 대적들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4절을 보면 네 번씩이나 만나자고 조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집요하게 느헤미야를 예루살렘 밖으로 유인해 내려는 수작이었습니다. 평화를 가장한 회담 요청이었지만 실제로는 암살하려는 음모였습니다.
이에 대한 느헤미야의 대응방법, 논리는 간단했습니다. 자신의 일을 멈출 수 없다는 분명한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자기 일에 대한 목표, 목적의식이 분명하다면 쉽게 인간적 요구에 끌리지 않습니다. 편하고 쉬운 것만이 대안이 아닙니다. 편하고 쉬운 것에는 함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목표에 충실하다면 어떠한 유혹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쉬운 대안을 찾기 전에 각자에게 주어진 목표와 목적을 다시 점검하십시다.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지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5~7절)
둘째, 대적들은 나쁜 소문, 루머를 퍼뜨렸습니다. 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봉하지 않은 편지는 누구든지 쉽게 내용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알려 소문을 퍼뜨리려는 의도였습니다. 그 내용이 6절에 있습니다. ‘이방 중에 왕에게 모반하려고 성벽을 건축했다는 소문이 있고, 또 느헤미야가 선지자들을 동원해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했으니 느헤미야 자신이 유다의 왕이 되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내용입니다. 이런 소문은 느헤미야에게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이 돌고 있으니 와서 의논하자는 것입니다.
근거 없는 소문과 루머는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갖고 있습니다. 에스라 4장에서도 이미 같은 모함으로 성벽재건이 중단되는 어려운 일을 겪었습니다. 사단은 이 같은 방법으로 거짓말로 공격해옵니다. 그리고는 이 문제는 해결해 줄 것 같이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라고 그럴듯하게 제안하는 것입니다. 사특합니다. 간교합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당황스럽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어떻게 대응합니까? 거짓 소문, 헛된 말에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대응합니다. 이토록 담대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희생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최선을 다해왔기 때문입니다. 지어낸 말에 우리가 쉽게 무너지는 이유는 우리 삶에 최선을 다한 흔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스스로 최선을 다하기보다 사람과 환경을 의지하면 다른 사람들의 판단과 비판에 쉽게 말려버립니다. 최선을 다합시다. 그래서 당당합시다. 담대합시다.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 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10~12절)
셋째, 가까운 사람을 매수하여 공격합니다. 스마야가 두문불출한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스마야에게 주의를 기울인 것을 보면 그가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찾아갔더니 “대적들이 죽이러 올 테니 함께 ‘외소’로 들어가서 목숨을 보호 하자”고 했습니다.
여기에 치밀한 음모가 숨어 있습니다. ‘스마야’는 ‘여호와가 들으시다’는 뜻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요 그의 가문은 제사장 집안인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소에는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비록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지도자이긴 했지만 성소에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마야는 함께 그곳으로 피하자고 했습니다. 자신은 제사장, 선지자이지만 느헤미야는 그렇지 못하다는 신분을 이용한 것입니다. 아차 하는 순간 넘어갈 만한 제안이었습니다.
그런데 12절을 보니까 스마야는 뇌물을 받고 이런 음모를 꾸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렇듯 사악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돈, 힘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느헤미야는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분명하게 알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매우 가능성 높은 대안이라도 거짓은 거짓일 뿐입니다. 저는 우리가 모두 먼저 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 위치, 해야 할 일, 역할을 분명하게 알아서 세상 유혹, 음모를 이겨낼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13절)
사단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를 무너뜨리며 공격해 옵니다. 사람과 환경을 총 동원해서 공격해 옵니다. 두렵게 하고, 죄를 범하게 하고, 비방합니다. 그래서 흔들리고 결국 무너지고 포기하고 맙니다. 최선을 다합시다. 담대합시다. 자신의 목표와 위치를 정확히 알고 회복시키십시다.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14절)
느헤미야는 모든 공격 앞에서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기억하고 싸워주십니다. 온갖 비방이나 적대 세력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직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위치를 굳게 하여 최선을 다합시다. 그리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시다. 예수님은 최선을 다해 자신이 지셔야 할 십자가를 지시고 ‘저들을 용서 하소서’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회복되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만 붙잡으십시오. 적들이 난리 법석을 떠는 동안 하나님의 성벽은 완성되어 갑니다. 우리 인행은 성숙해 갑니다. 내 손에 힘을 주십니다. 악한 세력을 물리치십니다. 할렐루야!